어쩌다 회사에서 중국 업무와 많이 엮이면서 중국어를 배웠고 대륙 뿐만 아니라 대만, 홍콩 등도 많이 다녀본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정체성과 다른 중국, 홍콩, 대만의 정체성이 많이 다른 것을 느꼈다.
한국인의 정체성 = 단일 민족 국가
한국인은 ‘단일 민족’의식이 강하다. 한국인의 머리 속의 ‘한국인’이라는 개념에는 한국 국적자, 한(韓)민족 이게 구분없이 뒤섞여있어서 ‘중국 조선족은 한국인인가 아닌가?’에 혼란을 겪는다.
단일 민족이고 국가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같은 역사를 겪었기에 역사의식도 대부분 비슷하다. 한국인들 끼리는 중국, 일본, 미국에 대한 역사의식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국가에 비하면 거의 똑같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한국과 다른 대만의 역사 특징
한국과 다른 대만의 역사 특징.
바로 ‘시대마다 한(漢)족의 외부 유입이 있었다는 것’이다.
선사~중세시대의 역사
삼국시대
국가를 이루지 않고 몽골, 중동, 남아메리카처럼 부족별로 흩어져 살았다.
중국 삼국시대에는 대만 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주(夷州)라고 불렀으며 오나라의 황제 손권이 병력 징발을 위해 ‘인간 사냥’을 지시했던 지역중의 하나이다.
송~원 시기
중국 대륙과 동남아 사이에 있어 중계무역이 활발했다.
원나라의 기세가 점점 커져서 중국 대륙의 한족이 타이완섬으로 밀려난 시기이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유입 시작이다.
명 시기
명 시기에는 대만 앞바다(현재의 푸젠성 본토와 대만 사이)를 봉쇄하여 중계 무역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네덜란드, 정씨 왕국 점령 시기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에 의해 처음으로 대만섬의 존재가 유럽에 알려졌고 포르투갈은 점령은 하지 않고 대만섬의 한족, 원주민과 교역을 했다.
후에 1600년대에 함선을 끌고 들어온 네덜란드인이 대만섬 남부를 점령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위해 대만인접지역의 중국인 푸젠성(대만해협 건너)의 한족들을 대만으로 이주시켰다.
대만 해협 건너편이 중국의 푸젠성(福建省:복건성)이다.
본격적인 한족 유입의 시작이다.
스페인은 대만섬 북부를 점령하였으나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몰아내고 대만섬 전체를 점령했다.
청 시기
정씨 왕국의 후예들이 대만섬에서 계속 항거하였으나 결국은 청에 정복되었다.
본격적인 한족 유입 두번째가 시작되었다.
한족들이 대만섬에 대거 유입 되었고 일부 원주민은 대만섬 평지에 남아 한족에 동화되고 일부 원주민은 고산지대로 이주하여 ‘고산족’이 되었다.
이렇게 청 시기에 유입되어 대만에 살고 있는 이들을 ‘본성인'(本省人)이라고 칭하고 대만 인구의 85% 정도로 본다.
일제 시기
청일전쟁에서 청이 패하고 대만섬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대만섬에 거주하던 일부 한족들이 항거하였으나 5개월만에 무력 진압되었다.
왕족과 사대부가 앞서서 나라를 팔아 개인몫을 챙기고 민중이 나라를 지키려 했던 조선과는 달리 대만섬은 청나라 본토가 싫어 이주한 한족들이 대부분이어서 조선처럼 강도 높은 항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항거, 학살사건이 없던건 아니다. 다만 조선에 비해 강도가 크게 낮았을 뿐.
장제스(국민당)과 한족의 유입
옛날에는 ‘장개석’ 이라고 불렀던 장제스(蔣介石)가 국공내전에서 밀리면서 대만 섬으로 후퇴했다. 장제스와 국민당 세력이 대만 섬으로 밀려나면서 또 한족이 대거 유입되었다.
이 때 유입된 한족을 ‘외성인'(外省人)이라 한다.
그리고 일제시대부터 있던 ‘본성인’을 일제 앞잡이로 취급하고 수탈하고 학살하는 일도 있었다.
자 이쯤되면 대만의 적은 일본일까? 국민당일까?
대만의 역사는 한족 유입의 역사
진짜 대만의 역사는 한족 유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유입된 시기에 따라서도 서로 저렇게 다르게 부른다.
사실 한국도 유입된 시기에 따라서 저렇게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있다.
중국 공산화 직전에는 산둥반도에서 인천으로의 중국인 한족 유입이 많았고 이들이 정착하여 2~3세대가 지난 지금은 ‘화교’라고 부른다.
1992년 우연한 기회로 어쩌다 시작한 한중수교 이후로 유입된 중국인은 대부분 조선족이다.
한민족(韓民族)을 중국에서는 조선족(朝鲜族)이라 부르며 중국 공산화 이후에 중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온 한민족을 ‘조선족’이라고 한국 사회에서 칭한다.
한국은 대만을 배신했다?
위에서 기술한 어쩌다 갑작스럽게 1992년 시작된 한중수교로 인해 중화민국(대만)-한국의 수교는 중지되었다.
중국과의 수료를 위해서는 항상 ‘대만과 수교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중국에서 내걸기 때문.
이 때문에 민주주의 중국을 지지하는 대만인들은 한국을 ‘배신한 국가’로 여긴다.
자 이쯤 되면 한국도 대만의 적인가?
대만인은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할까?
개인마다 역사 의식이 차이가 큰 부분이 이 부분이다.
-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며 중국 공산당에 동화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공산당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 자신은 ‘중국 대륙의 역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대만인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민족과 국적을 거의 동의어 취급하고 대부분 비슷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는 한국인이 보기에는 한 번 읽어서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설명이다.
민족과 국적은 다르다. 다민족 국가는 한국과는 다르게 민족에 따라, 개개인에 따라 역사의식, 민족의식, 정체성이 모두 다르다.
여기에서 ‘대만 독립’이라는 주제로 이어지면 더 복잡하다.
대만 독립 논란
개개인의 역사의식에 따라서 대만 독립에 대한 관점도 모두 다르다.
- 송, 명, 청의 역사 모두 우리와는 관계 없다. 한족의 역사도 우리와는 관계 없다.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며 타이완인일 뿐이다. 중화민국이 아닌 ‘타이완’ 그 자체로의 독립을 원한다.
- 자유주의 중국으로써의 독립을 원하는 부류.
최근 대만의 흐름
대만에서는 기업명이나 공공기관의 ‘중화’를 모두 삭제하는 분위기로 가고있다.
‘중화민국’보다는 ‘대만’에 무게를 두고.
영어로는 ‘Republic of China’에서 ‘Taiwan’에 무게를 더 싣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