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30대들에게는 참 옛날사람이지만 의외로 내 또래의 사업가나 자영업자 집단에서 정주영 일화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정주영의 생애에 대해서 처음 알게된 건 초등학교 때 읽은 정주영에 대한 책 때문이다.
정주영 책들에서 가장 유명한 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일 것이다.
난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고 내가 읽어본 건 당시 아동용으로 나온 ‘지구촌을 누비는 거인’이다. 소년한국일보에서 발간하고 전국 각 학교에 무상으로 뿌렸던 책.
판매용도 아니었고 비매용으로 전국에 뿌린 책이었기에 지금은 구할 수가 없는 책이다.
이봐, 자네. 해보기나 해봤어?
정주영 어록중에 가장 유명한 말이 이게 아닐까 싶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나’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퇴사하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찍어 먹어 봐야’아는 경우가 많은 걸 느꼈다.
분석해보면 똥인지 된장인지는 어느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것’, ‘시도해보지 않은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실패할게 뻔히 보이는데 뛰어들어서 크게 성장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에게 그들처럼 무모한 도전을 요구할 수 없겠지만 ‘시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는 한 마디.
서산간척지 ‘정주영 공법’
위에서 읽었던 옛날 책에는 이 일화가 나오지 않지만 이것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에피소드이다.
서산방조제 둑 막바지 공사에서 초속 8m가 넘는 유속으로 인해 아무리 큰 돌을 부어도 바닷물에 떠내려가는 문제가 있었다.
정주영 회장이 23만톤짜리 유조선을 둑 옆에 가라앉혀서 물막이 역할을 해서 유속을 낮추어서 공사하자는 것.
이렇게 서산방조제 막바지 공사는 마무리되었다.
빈대도 머리를 쓴다
인천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던 시절
빈대에게 자꾸 물려 큰 상을 펼치고 상다리에 물을 채운 대야를 받치고 잤는데도 빈대에 물렸는데 빈대가 천장으로 기어 올라가서 뛰어 내려 이불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였다고한다. ‘벌레도 이렇게 머리를 쓰는구나’라고 느끼고 임직원에게도 ‘빈대도 머리를 쓰는데!’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자동차 공업사 사장이 건설사를 차리계 된 계기
정주영 회장이 당시 자동차 공업사를 할 때 은행에서 보니 큰 돈을 빌려가는 사람은 건설업자가 많은 것을 보고 ‘현대토건사’를 설립했다.
겨울에 잔디심기?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 일정에 맞춰 한겨울에 UN묘역에 잔디 입히는 일을 발주 받았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겨울에 잔디를 구하는게 불가능이었다. 다른 업체에서 거절한 건을 받고 초록 풀로만 덮이면 상관없다는 확인을 받고 보리싹을 구해서 보리싹을 심었다. 그리고 봄이 오고 나서는 잔디로 교체했다.
한국전쟁 당시 통역장교로 복무했던 동생 정인영의 도움으로 주한미군 관련공사를 시작했고 이 보리싹을 심는 사건이 주한미군에서 유명해지면서 주한미군 관련 공사는 현대가 다 쓸어갔다.
알파엔진 개발 비화
현대자동차는 초기에 미쓰비씨의 기술지원으로 만든 엔진이 많았다.
현대자동차에서 첫 독자엔진인 알파엔진 개발이 어느정도 진척되자 미쓰비시에서는 로열티 반값할인 조건으로 연구 중단을 제안받았으나 이런 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보니 독자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거절하고 독자개발을 추진하였다.
이렇게 개발된 엔진이 1500cc 알파엔진이고 스쿠프, 엑센트, 아반떼(구형 아반떼부터 XD까지) 등에 사용되었다.
꽃바구니 vs 손목시계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 당시 나고야 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는 IOC위원들에게 비싼 시계를 나누어주며 홍보를 하였으나 정주영은 IOC위원들의 숙소에 꽃바구니를 돌리면서 홍보를 했다. 승산이 없어보였지만 다음날 아침 리셉션에서 이 꽃바구니가 많이 회자되면서 서울 유치단에게 관심을 많이 보였다는 일화가 있다.
따귀로 뱃삯내기
집을 나와 서울로 가는 길에 강을 건너야 하는데 뱃삯이 없었다.
망설였지만 배가 있는데 안 타는 것이 바보같아 돈도 없이 타버렸다.
목적지에 다다라 돈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자 사공이 따귀를 때리고 ‘후회되지?’라고 묻자 ‘네 후회되네요. 따귀로 뱃삯을 낼 수 있었으면 진작 탈 걸 그랬어요.’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